캐나다 토론토/오타와 유학 일기: 세계여행과 다문화

2020. 9. 2. 02:37Life in Ottawa (2019)

 

오늘의 노동요 

2019년 2월. 눈이 무릎까지 쌓일 만큼 추운 날씨에 뉴스에서만 접하고 만화나 드라마, 영화로만 접하던 북미 대륙에서 난생처음으로 비행기 환승이 란 걸 해보며 벌벌 떨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바쁜 와중에 메모장에 서툴게 적어 놓은 일상들을 조금씩 꺼내고자 한다.

사실 2019년을 캐나다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건 말그대로 2주동안 결정된 일이었다. 유학 장소 결정, 비행기 티켓, 그리고 비자신청까지 모든게 한 달 안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행사에서도 이렇게 빨리 되는 건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짓이었지. 예정대로 미국을 갈까, 호주를 갈까, 영국을 갈까하다가 결국에 오게된 캐나다.

아는거라곤 저스틴비버, 밴쿠버 올림픽, 미국 위에있는 또다른 영어 쓰는 나라..? 라는 인상?

얼굴도, 문화도, 성격도 비슷했던, 어찌보면 비교적 무난했던 일본에서 반은 이민자(유학생)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삶의 방향성이 보이지 않고, 영어 실력에 회의감을 느끼던 터라 조금 쉬어가자는 느낌으로 임했기에, 낯선 땅에서의 유학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갑자기 1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가능하면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배워오세요"라는 기회와 함께 이국땅에 놓여진 것이었다.

블로그에는 꽤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썼지만 캐나다에 가기 전 내 영어실력은 사실 "How are you”에 어떻게 제대로 답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예를 들어, 월마트에서 나에게 약품을 파려는 직원이 "Hello! how are you?"라고 했을 때, 정말 내 안부를 묻는 거라고 생각해 주저리주저리 "I’m not feeling good.. because.. “라며 전날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는다던가, 반오십이 지난 이 나이에 사람들한테 “I thought you’re seventeen”이라며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는 말을 듣는다던가.. 영어도, 문화도 여러모로 신선한 자극의 연속이었다. 생각해보면 2018년 1년 동안 어떻게 국제 기숙사 사감 일을 해 냈는지 모르겠다..

<에피소드 1: 토론토에서 중국어 배우기>

한국어도, 영어도, 일본어도 질렸는데 중국어랑 프랑스어 중에 뭘 새로 공부할까 하다가, 중국인 친구들이랑 더 깊은 유대관계를 갖고 싶어서 다시(!) 배우기 시작한 중국어. 한국이나 일본에서 배울 때랑은 또 느낌이 너무 달랐다. 만화영화에 나올 것 같은 발랄한 중국인 선생님(무려 중년의 남자분!)한테, 영어로 중국어를 배우는데 같은 반 친구가 터키 사람이거나 카타르 사람이었던 게 여전히 신기하다. 심지어 반 친구 직업은 유명한 IT 기업 직원이었고, 터키 친구는 모델 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반에서 유일한 한자권이어서 같은 반 친구들을 많이 도와줬었다. 클래스 메이트들이 대답을 잘 못하면 내가 입모양으로 도와준다던가 ㅋㅋ

<에피소드 2: 토론토에서 교통사고>

이란인 친구랑 음악 앙상블을 하러 역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친구가 차를 가지고 나를 마중 오던 길이었는데 주차를 하고 있던 중 작은 추돌 사고가 나 버린 것이다. 사고 차량은 하얀색 페. 라. 리...! 심지어 차주는 중국인....! 일반화는 아니지만 합의 관련해서 깐깐하다는 소문이 많아서 나랑 친구랑 둘 다 벌벌 떨었다.

사고 났을 때 보고하러 가는 리포트 센터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대기를 하고 있는데 문득 '해외 이민을 왜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깨달았다. 내가 이주하고자 하는 나라에 적어도 3년 이상의 거주 경험이 있고, 언어를 모국인이랑 헷갈릴 정도로 잘 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현지에 친구가 있다고 해도, 내가 외국에서 혼자의 힘으로 이런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또 한 번 해외 생활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값진 순간이었다.

경찰서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 앞 좌석에 앉은 어떤 아저씨가 우리한테 말을 거는 것이다. 아저씨의 외모 + 영어 발음으로 보아 내가 "어디서 오셨냐"라고 스페인어로 묻자, 무척 기뻐해 하시면서 스페인어로 계속 떠들었다. "중국인" 운전수와 트러블이 생겨 "캐나다" 경찰서에서 "이란인" 친구와 "아르헨티나" 출신 낯선 아저씨한테 "스페인어"로 대화를 한다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괄프, 밴쿠버, 캘거리, 워털루, 토론토, 콘웰, 핼리팩스, 퀘백, 몬트리올, 오타와 등 여러 지역에서 온 캐나다인 친구들을 비롯하여, 홍콩, 이탈리아, 프랑스, 브라질, 인도, 멕시코, 한국, 중국,필리핀,미국,일본 처럼 내게 너무나 익숙하지만 여전히 잘 몰랐던 나라를 시작으로 자메이카, 예멘, 레바논, 스리랑카, 알제리아, 모로코, 이집트,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처럼 글자로만 알던 곳에서, 내 눈앞에 진짜로 모인 친구들이 캐나다라는 땅에서 터를 자리잡고, 혹은 터를 잡으려하는 노력하고 모습을 보며 내가 꿈꾸던 화합의 장은, 진정한 Multiculturalsm이 행해지고 있는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에게 나의 서울-도쿄-오타와-토론토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보고 “글로벌”하다 “액티브”하다며 무척 감탄하곤 하는데,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멋쩍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봤을땐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당사자가 더 글로벌하고 빛이 반짝반짝 나고 있는데 말이다.

아직 가보지 못하였지만 가보고 싶은 매력적인 세계 각국의 문화와 음식, 이야기를 들려준 내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자메이카의 치킨밥, 중동의 샤와르마와 모로코의 쿠스쿠스, 인도의 지역에 따른 커리와 난 등 중동, 서아시아의 식문화는 세상에 더 널리 알려져야 마땅하다.)

플룻콰이어에서 한 달만에 무대에 선 것도, 유학생이 아닌 일본인 학생들의 튜터가 되어 홋카이도에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도, 돌아갈 교회와 친척들이 생긴 것도, 한국어 클럽의 임원이 된것도, 모의 수업과 수업 참관을 해본 것도, 숨겨진 재능이 있던 카약, 코티지, 언덕 등산도 캐나다에 오지 않았더라면 평생 몰랐을 것들이다.

그곳에서의 삶이 익숙해지고, 지내온 날이 돌아갈 날보다 더 많이지는 것을 하루하루 체감하고 있는 와중에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다음에 밥 먹으러 가요", "영화 보러 가요"라며 말해줄 때마다 "그래요"라며 말은 하지만 나는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까라며 마음 한편이 조금 무겁기도 했는데.. 그래도 그때 친구들이랑 아직도 계속 주기적으로 기쁜 일 슬픈 일 있을 때마다 연락을 주고 받는게 얼마나 감사한 관계인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소중한 인연들과 조금만 더 오래 시간을 보낼 걸 후회스럽기도 하다.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일 년만 더 있었더라면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일 년만 더 일 년만 더 하다가 계속 살게될 것 같지만..ㅎ..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2019년은 어땠냐고 물어보면, 정말 사랑받는 한 해 였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아직 캐나다 생활이 1년도 채 되지 않기에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운 걸 수도 있겠다.

 

자연이 예뻐 사진 찍는 맛이 쏠쏠했는데.. 아름답던 그 맑은 하늘이 그립다.